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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시가 될 첫 음절, 첫 단어를당신에게서 배웠다 감자의 아린 맛과무의 밑동에서 묻은 몽고반점의 위치와탱자나무 가시로 다슬기를 뽑아 먹는 기술을그리고 갓난아기일 때부터울음을 멈추기 위해 미소 짓는 법을내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맞잡으면기도가 된다는 것을 당신은 내게 봄 날씨처럼 변덕 많은 육체와찔레꽃의 예민한 신경을 주었지만강낭콩처럼 가난을 견디는 법과서리를 녹이는 말들질경이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내 시는 아직도어린 시절 집 뒤에 일군 당신의 텃밭에서 온다때로 우수에 잠겨 당신의 바라보던 무꽃에서 오고비만 오면 쓰러져 운다면서당신이 일으켜 세우던 해바라기에서 오고내가 집을 떠날 때당신의 눈이 던지던 슬픔의 그물에서 온다 당신은 날개를 준 것만이 아니라채색된 날개를 주었다더 아름답게 .. 2020. 7. 26.
반딧불이 반딧불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려고당신을 처음 고향 마을에 데리고 간 날밤의 마당에 서 있을 때반딧불이 하나가당신 이마에 날아와 앉았지 그때 나는 가난한 문학청년나 자신도 이해 못할 난해한 시 몇 편과머뭇거림과그 반딧불이밖에는줄 것이 없었지 너무나 아름답다고,두 눈을 반짝이며 말해 줘서그것이 고마웠지어머니는 햇감자밖에 내놓지 못했지만반딧불이로 별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반딧불이가 사람에게 날아와 않곤 했지그리고 당신 이마에도그래서 지금 그 얼굴은 희미해도그 이마만은환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류시화-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에서-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 2년반째 원거리 하고 있는 여자친구는 있다. 주변 사람들이 롱디를 어떻게 그렇게 길게 할 수 있느냐고 많이들.. 2020. 7. 25.
저편 언덕 저편 언덕 슬픔이 너를 부를 때고개를 돌리고쳐다보라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그 슬픔에 기대라저편 언덕처럼슬픔이 손짓할 때그곳으로 걸어가라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저편 언덕으로 가서 너 자신에게 기대라슬픔에 의지하되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류시화-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에서- 슬픔도 습관이 된다. 감정 컨트롤이 안되고 다운되고 우울할때 슬퍼하고 있다는 자체로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행복할때 신나는 노래가 듣고 싶은 것처럼 슬플때는 슬픈 노래를 듣고 괜히 센치해져야 감정이 다시 차분해지는데 도움이 되는것 같다. 요즘은 별 다른 감정기복 없이 지낸다. 그래도 가끔 불쑥 찾아오는 슬픔에 휴대폰에는 항상 마음에 위안이 되는 곡 리스트들이 준비돼 있다. 특히나 .. 2020. 7. 24.
나무 나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나무는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나무가 하나 있었다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비를 가려주고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았을때그 바람으로 숨으로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류시화-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에서- 밖에 소나기가 내린다. 소낙비가 땅을 때려 풀내음을 일어나 창문 사이로 들어왔다. 문 열어 두고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들어 더위.. 2020.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