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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

반딧불이

by Skysketcher 2020. 7. 25.



반딧불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려고

당신을 처음 고향 마을에 데리고 간 날

밤의 마당에 서 있을 때

반딧불이 하나가

당신 이마에 날아와 앉았지


그때 나는 가난한 문학청년

나 자신도 이해 못할 난해한 시 몇 편과

머뭇거림과

그 반딧불이밖에는

줄 것이 없었지


너무나 아름답다고,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해 줘서

그것이 고마웠지

어머니는 햇감자밖에 내놓지 못했지만

반딧불이로 별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반딧불이가 사람에게 날아와 않곤 했지

그리고 당신 이마에도

그래서 지금 그 얼굴은 희미해도

그 이마만은

환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류시화

-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에서-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 2년반째 원거리 하고 있는 여자친구는 있다. 주변 사람들이 롱디를 어떻게 그렇게 길게 할 수 있느냐고 많이들 물어보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서로 너무 외로워 하지도 않고 맡은 자리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다 보니 2년반이 흘렀다. 


이 시를 읽고나서 여자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나를 보면 환하게 웃어주고 영상통화하면 언제나 밝은 얼굴을 반겨준다. 어떻게 이렇게 한결 같을 수가 있을가 싶을 정도로 사귀는 3년동안 변하지 않고 늘 그대로다. 아니면 변했지만 나에 대한 감정을 지키려고 부던히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반딧불이가 사람에게 날아와 않곤 했지

그리고 당신 이마에도

그래서 지금 그 얼굴은 희미해도

그 이마만은

환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환하게 웃고있는 여자친구가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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